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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이야기] 종말을 사는 믿음의 청년들에게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12.04 | 조회 : 2780

소식지 SU 이야기의 이번 호는 캠프 특집으로 꾸며졌습니다. 청년을 위한 캠프인 YLTC 소식을 전합니다. 다음 YLTC20202월에 열리니, 많은 기대와 참여 부탁드립니다! :-)

 

 

: 조영민 목사(나눔교회, 2019 여름 YLTC 주 강사)

 

 

성서유니온 YLTC에서 세 번의 집회 시간에 나눴던 본문은, 그 기간 매일성경본문인 데살로니가 전후서였습니다. 이 서신들은 바울서신 중 종말의 특징과 그 시기를 사는 성도의 삶에 관하여 가장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말씀을 사랑하는 귀한 청년들과 이 두 서신을 살펴볼 수 있었던 그 시간은, 제게는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짧은 시간, 많은 분량의 본문을 강해하기 위해 제가 선택했던 방법은 성경 본문의 구조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체 본문을 셋으로 나눴고, 전서 1장부터 3장을 바울의 변명으로, 4장부터 5장까지를 종말의 때를 사는 법’, 그리고 후서 전체를 종말에 대한 심화된 가르침과 성도의 삶이라는 소주제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 주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심화되어 논리를 전개하는지를 살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이 글을 통해 그 때에 전했던 말씀과 적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3장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지고 있던 오해를 풀려는 바울의 논리가 들어 있습니다. 바울의 갑작스런 떠남과 돌아오지 않음으로 인해 바울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오해가 생겼습니다. 그는 지금도 계속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밝히고, 디모데라는 자신의 영적인 아들을 보냈다고 하는 것, 그리고 그 지역에 교회를 세울 때 어떤 태도로 사역했는지에 관하여 교회에게 상기할 것을 요구합니다. 사정이 있어 아직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진실로 돌아가 얼굴을 보고 진리를 가르치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진리는 말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 진리는 그 진리를 담는 그릇인 사람을 통과하여 전달되고 그런 진리만이 사람의 영혼에 변화를 끌어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것이 참 진리였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는 긴 과정을 밟습니다. 그의 삶이 진리를 반영하는 것이었기에 우리는 바울이 들려주었고, 또 들려 줄 진리에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또 우리는 바울의 이 해명을 읽으며 포기하지 않는 교회를 향한 사랑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걸까요? 그가 우리 주님께 먼저 그런 사랑을 받아서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4-5장은 이 서신의 본론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는 이들,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가 더욱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입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라고 하는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이미 잘 실천하고 있는 소문난 공동체였지만 이것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힘써 이것들을 계속 행하라는 권면입니다. 특별히 그들은 성적인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서로 사랑하기 위해 더욱 힘써야 했습니다. 또 그들 가운데 들어온 잘못된 종말론으로 인한 두려움을 떨쳐야 했고, 바른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 주님의 오심을 소망으로 기다리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종말을 산다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특별한 종교적인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종말을 사는 자는 별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깨어 있는 삶,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을 열심을 내어 계속하는 하는 것입니다.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지만 쉽게 잊어버리는 바로 그 성도 일상의 삶에 대한 명령입니다.

 

후서는 전서에서 다뤘던 임박한 종말에 대한 관점에 대한 교회의 잘못된 읽기로 생긴 극단적 종말론자들을 돌이키려 쓰였습니다. 유대인들과 로마의 핍박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종말이 임박했다는 바울의 가르침은 일상의 삶을 버리고, 아무런 일상적인 일도 하지 않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게으른 사람들을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교회를 위해 핍박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거짓진리의 분별을 명령하며 종말의 때를 알아 볼 수 있는 두 기준 배교와 불법의 사람에 대해 가르칩니다. 그리고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너희가 이미 배웠던 성도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종말의 때를 바르게 사는 거라 정리합니다. 분명 핍박은 성도인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러니 그 성도이기에 당하는 핍박은 우리가 주를 위해 핍박을 받을 만큼 성숙해졌음을 증명하는 표입니다. 그러니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핍박의 현실을 인정하지만 굴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겁니다. 가장 영적인 일은 어쩌면 가장 일반적인 일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주님 분명히 오십니다. 그 때 하루하루 내가 살아왔던 그 일상의 신실함으로 우리 주님의 재림을 준비한 자로 그분 앞에 설 수 있기를 원합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의 많은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이렇게 정리해 보니 한 가지가 궁금합니다. 이 말씀을 함께 나눴던 그 청년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임박한 재림의 시기라는 것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깨어 있기를 선택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나눴던 그 말씀은 잊어버리고 세상 속에서 세상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 버렸을까요? 바울이 계속해서 교회를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저 역시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귀한 청년들의 삶에 진리의 빛을 비추어, ‘오늘이라는 이 시대를 주의 재림을 소망하는 자답게 살 수 있기를 말입니다. 우리를 잠들게 하려는 세상 속에서 맑은 의식을 유지할 뿐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더욱 힘써 행하기를 말입니다. 오늘도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서 살아갈 이 귀한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이 임하기를 간구하며, 안부를 전합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2: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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