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3:1-13 너는 내 것이라
1.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1-3)
본문에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씀함으로써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불러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 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라고 말씀함으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함께하시고 지켜주심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여 영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지명하여 불러주셨습니다. 주님의 소유로 삼기 위해서 우리를 지명했습니다. 이는 초점을 맞추었다는 의미로서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특별한 목적을 위해 부르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대속 물을 통하여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물 가운데로 지날 때도 함께 하시고,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침몰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시고, 불 가운데로 지날 때 불꽃이 사르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두려워 말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심으로써 소유주가 되시기에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창조 또는 조성하셨다는 사상은 그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말게 하려는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도우실 때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고 합니다. 미래에 대한 무지입니다. 그래서 무지는 불안, 두려움, 불확실함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이끄심을 믿는다면 어찌 두려워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가 힘이 세시고 능력이 많으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으로 믿는다면 그 자식은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겠다고 하시는데 왜 두려워합니까.
하나님의 소유로서 담대함으로 주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2. 회복시키시는 하나님(4-7)
본문에서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을 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말씀함으로써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월등하게 선하거나 의로워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에 기인하여 그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하심을 말씀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라고 말씀함으로써 바벨론의 포로에서 귀환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대 민족들이 많은 위험을 당하며 심지어 바벨론에 잡혀갈 것이나 그들은 두려워할 것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목적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 받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교훈의 말씀을 하시는데 9장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버림을 받고, 10장에서 예수님을 믿지, 안았기에 버림을 받지만 11장에서는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되어 이방인의 수가 차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심판을 당해도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루터기는 남겨놓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회복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이제 우리도 소망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은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본분을 다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3. 증인의 삶을 삽시다(8-13)
본문에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끌어내라’라고 말씀함으로써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내도록 말씀합니다. 그들이 선택받았고, 말씀을 받았고,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인 표까지 받았지만, 우상을 섬긴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알려 주며 이전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겠느냐 그들이 그들의 증인을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을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라고 말씀함으로써 그들에게 어떤 우상이 미래에 나타난 일 곧 이스라엘이 장차 바벨론에서 해방될 사건을 가르쳐 준 우상이 있냐고 반문하면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라고 말씀함으로써 이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증인이 되도록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라고 말씀함으로써 이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중인으로 세우겠다고 다시금 강조하십니다.
증인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만 구원자임을 말씀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장차 바벨론에서 해방될 사건을 가르쳐 준 우상이 있냐고 반문하면서 다른 신이 없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증인은 사실에 대한 체험자입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목격하고 그 일을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증인의 삶을 살도록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증인은 순교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계 2:13). 당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데는 순교자처럼 자기 생명을 잃을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증인이란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순교 당한 순교자들을 말합니다.
우리도 증인의 삶을 살도록 거짓과 형식에 치우친 믿음이 아니라 진실한 신앙인이 되도록 결단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