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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9:1-10 잃었다 되찾은 삭개오
작성자 : 이종석 | 작성일 : 2021.03.16 | 조회 : 526

19:1-10 잃었다 되찾은 삭개오 89

1. 육은 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1-4)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셨다가 나가시는데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예수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그는 키가 작은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입니다. 여리고는 베레아 지방으로부터 요단강을 건너가는 길목에 위치하였는데 여기에 세관이 있어 통상인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였습니다. 이곳에서 세리장으로서 부자입니다.

그는 재물이 인생의 욕구를 충족시킬 줄로 알고 세리가 되었고 세리장까지 되어 돈을 많이 모아 부자가 되었지만, 그의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좋은 집, 좋은 가구, 많은 저축을 해 놓고 살았지만, 가슴은 공허했습니다. 더구나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하여 동족을 학대하고 착취하고 무자비하게 세금을 거둬들여서 로마 정부에 세금을 바치고도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지만, 그의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은 떠나고 이제는 혼자 외톨이로 살다 보니 더 힘든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돈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번민하는 가운데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영접해 주시고, 함께 음식을 잡수셨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이때 삭개오는 영적인 갈급함에 강하게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인격에 깊은 호감을 느낍니다. 마음속에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뵙고자 하는 소원이 불타올랐습니다. 하지만 키가 작아서 접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시간에 맞추어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차원이 낮은 육은 차원이 높은 영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은 믿음 없이는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 영적인 갈급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삶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이 하나님을 만나야 참 만족과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납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 절망은 휴지처럼 찢어지고 맙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은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로 다 씻김 받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 되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이 되도록 합시다.

2. 아시고 찾아오신 예수님(5-7)

예수님께서는 삭개오가 있는 곳까지 오시더니 위를 쳐다보시며 그를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하시자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집으로 예수님을 모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셨다고 수군거립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자리에서 가던 길을 멈춥니다. 그리고 나무 위를 쳐다보십니다. 그리고 이름을 부르십니다.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자리를 아시고,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부르시고, 그의 마음도 아시고 속히 내려와 같이 집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그의 마음이 고독함을 아시고 갈증을 풀어주시기 위하여 속히 내려오라하시자 삭개오는 지금까지 가슴에 뭉쳐 있던 온갖 외로움과 고독함과 갈증들이 다 풀어지고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과 삭개오의 만남은 전적인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여러 가지의 한계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예수님께서 이를 아시고 예수님이 인격적으로 삭개오를 부르고 그의 집에서 머물겠다고 말씀함으로써 귀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곧 모든 일이 예수님의 주권적 의지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알지 못하는 것이 없는 전지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바다 끝에 가도 아시고 심지어 음부에 내려가서 숨는다고 하더라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우리의 심정을 잘 아십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아시고, 결과를 미리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모든 것을 맡기며, 의지하며,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3. 구원받은 자는 삶이 변해야 합니다(8-10)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도록 하자 그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주여, 보시옵소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삭개오는 지금까지 재물이 그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재물을 위하여 동족의 피를 빨아먹었습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사람답게 여기지 못했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서 무자비하게 빼앗고 속이고 갈취하며 사욕을 채우는 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생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또 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선포하며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말씀합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아무도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은 장차 미래에 이루어질 것으로만 이해되었지만 예수님은 구원은 현재의 삶에서 누릴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자기만 알던 세리장 삭개오가 어렵게 사는 이웃을 생각하게 되었고 구제하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자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선언합니다. 그가 가치관이 변합니다. 재물 관이 변합니다.

우리의 삶도 변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칭의로서 완성되었습니다. 동시에 장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조건으로서 영화를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위해서 과거에 받았던 구원이 미래로 단숨에 뛰어넘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구원받은 자로써 현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성화라 합니다. 곧 구원받은 자는 현재의 삶에 천국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후 영화가 일어나기에 성화의 과정인 지금 내가 변화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변화 받아 하나님의 도구로써 쓰임 받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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