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55:1-23 모든 근심을 맡깁니다
1. 힘이 들수록 기도합시다(1-11)
본 시 55편은 다윗이 사울에게 핍박받으면서 지은 시라고 하기도 하며, 압살롬의 반란이 성취되어가는 동안에 지은 것이라고도 하며, 다윗의 친구인 아히도벨의 배반에 극한 고통 가운데 지은 시라고 말함으로써 배경을 다양하게 말합니다. 이는 곧 다윗이 그를 괴롭히는 원수들로 인하여 고통 가운데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근심으로 편하지 못합니다(2). 핍박을 받아 마음이 심히 아픕니다. 그래서 사망의 위험에 이르렀습니다(3-4). 두려움과 떨림이 공포로 이어집니다(5). 비둘기같이 훨훨 날고 싶습니다(6-7).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고 싶습니다(8). 이런 가운데서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가 있고 시험 환난 가운데서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으로서 전지, 전능, 자존, 무한하신 능력과 성품이 있습니다. 공의, 사랑, 자비, 인내, 선하심의 도덕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신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문제의 주관자와 해결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모든 문제를 주께 아뢰며 기도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2. 다윗이 당하는 고통 속에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12-15)
다윗이 당하는 고통의 이유가 12~13절에서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왜 그렇게도 괴로워했는지 이유를 알게 됩니다. 다윗은 모반을 꾀한 자가, 자신에게 매우 신임받던 인물이었기에 더 큰 괴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해하려는 자가 차라리 그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사람이었다면 그토록 큰 심적 고통은 겪지 않았을 것인데,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하여 하나님의 집안에서 다녔던 사이인데 어느 날 갑자기 원수가 되어 공격하니 죽을 만큼이나 심히 아팠던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41편 9절에서도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라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 18절에서 시편 41편 9절을 인용하시면서 당신에게 일어날 일을 말씀하시면서 다윗에게 일어난 일이 그대로 예수님에게 성취됨으로써 모형임을 말씀합니다. 바로 다윗이 당한 배반은 그리스도가 당할 배반의 그림자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제자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제일 신임했기 때문에 재정을 맡겼던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한 예수님의 심정은 얼마나 찢어지게 아팠을까요?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예수님의 남은 고난이라면 얼마나 영광입니까?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마음속에서도 이런 고통이 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가리켜 마음의 전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시기와 질투와 험담이 마음의 전쟁을 일으키고 이로 인하여 한 영혼이 쓰러져 죽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속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지속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남자를 창조하시고 왜 돕는 배필로 여자를 남자의 갈비뼈로 만드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형제는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하여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친구를 위하여 존재하도록 창조하셨음을 깨닫고, 죄인이라 할지라도 가슴에 품고 돕는 자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고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아픔을 되새기며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안고 돕는 자로서 삶을 살도록 합시다.
3.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고 기도합시다(16-21)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호와께서 기도에 응답하심을 확신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라고 기도합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기를 힘들게 하는 자가 낮아지고 전쟁에서 뽑힌 칼임을 확신합니다. 그는 쫓기는 신세이지만 완료 시제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확실함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기도는 언약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믿고 기도한 자에게 야속을 이루어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약속을 믿고 기도하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고 기도한 자는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온전히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은 십자가의 그늘뿐입니다. 특히 보혜사 성령께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떠나지 않은 임마누엘 하나님으로서 삶 전체를 주관하십니다. 다윗은 악인 때문에 도피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친근하던 자의 배신으로 인한 실망과 허탈과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차라리 비둘기처럼 멀리 날아가서 역겨운 세태를 외면하고 은거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보복하고 싶은 충동도 느낍니다(9, 23). 그러나 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약속을 믿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나 지금이나 항상 공의로운 심판자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거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에게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그래서 잠 24:1절에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라고 하셨고, 시 73장에서는 악인은 형통 같으나 졸지에 망한다고 증거로 제시합니다. 그래서 악인은 성공 같으나 실패요, 자랑 같으나 수치이기에 부러워 맙시다. 도리어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악인들이 세상에서 행하는 모습을 보고 회의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이 아무리 날뛴다고 할지라도 그 멸망의 날은 벌써 하나님께서 작정해 놓으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악인에 대한 멸망의 날을 지체시키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계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약속을 믿고 기도합시다.
4. 모든 근심을 하나님께 맡깁시다(22-23)
다윗은 자신을 이인칭으로 지칭하면서, 압살롬과 아히도벨의 반역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된 결론을 피력합니다(W. a. Vangemeren). 이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기에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나약함이 결국은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로 인하여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염려 걱정 근심을 맡겨버리라는 말씀은 던져 버리라는 뜻입니다. 어려운 일을 나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그 문제와 걱정거리를 하나님께 던져 버리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맡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며 그 어려운 가운데서 구원해 주십니다. 또한 영적 힘을 공급해 주심으로 이 고통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운 일을 섭리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능하신 손안에 있습니다. 주께 모든 문제를 맡겨 해결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