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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9:13-28 아들들의 미래(2)
작성자 : 이종석 | 작성일 : 2020.09.22 | 조회 : 598

49:13-28 아들들의 미래(2)

1. 하나님 영적인 이스라엘에는 종이나 자유인의 구별이 없습니다(13-21)

야곱의 아들 중에서 13절의 스불론과 14절 잇사갈은 야곱과 레아 사이에 태어난 열 번째 아들과 아홉 번째 아들입니다. 그리고 16절 단과 21절 납달리는 라헬의 시녀 빌하의 소생이고 19절 갓과 20절 아셀은 레아의 시녀 실바의 소생입니다. 일반적인 관습에 따른다면 이들은 서자이지만 고대 근동에서는 본부인의 의사에 따라 남편에게 시녀를 주어서 얻은 아들은 법적으로 적자들과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이 4명의 첩의 소생들도 다른 후손들과 동등하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훗날 이들은 첩의 소생이지만 동등한 자격으로 이스라엘 12지파를 형성합니다. 이들에게도 다른 지파에 있었던 구원에 대한 소망과 함께 영적 이스라엘의 예표가 있었으며 장차 그리스도의 구원을 준비하는 이스라엘의 한 지파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영적인 이스라엘에는 종이나 자유인의 구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 할례나 무할례도 구별이 없습니다. 3:11에는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 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고 빈부의 구별도 없습니다. 문명인이나 야만인의 차이도 없고 귀천의 구별도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한 신앙의 삶만이 있습니다. 이같이 중생한 무리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모든 성도가 형제애로 만나는 공동체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평등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모두 똑같은 하나님의 형상들로서 하나님 앞에 동등한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전 12:26~27에는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하나 된 성도이기에 서로 지체의식으로 하나가 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2.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합시다(22-26)

요셉이 받은 복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말씀함으로써 비록 가뭄이 심한 지방이라 할지라도 샘 곁에 심어진 나무는 자연의 재해를 당하지 않는 것 같은 복을 받음을 말씀합니다. 또한,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지만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말씀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받게 됨을 말씀합니다. 요셉의 삶은 물 없는 웅덩이에 빠지는 고난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영적 생명수를 공급받아 삶의 뿌리가 메마르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강한 자에게 고난도 받으나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게 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더욱 강대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생애는 실제로 담을 넘는 축복의 무성한 가지로 번성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통해서 후에 여호수아, 드보라, 사무엘, 기드온, 입다, 등 이스라엘의 많은 지도자가 배출되었습니다. 요셉이 담을 넘는 축복의 비결은 생명의 샘 되시는 하나님께 뿌리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생명의 샘 되시는 하나님께 뿌리를 두었기 때문에 노예로 팔려도 고된 일을 해도 무고히 감옥에 갇혀도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기에 목마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게 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더욱 강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받습니다. 위로 하늘의 복은 이슬과 비와 햇빛을 가리키고, 아래로 원천의 복은 샘들과 지하수와 같은 물의 근원을 가리키고,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은 많은 자손을 가지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성경의 역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하신 역사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헤매는 장면보다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다닌 장면이 더 많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사랑한 장면보다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리워하시고 사랑하신 얘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 하나님을 가리켜 임마누엘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요14:18에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말씀하십니다. 승천하시기 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동행함으로써 복 받는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3. 믿음의 분량대로 복을 주시는 하나님(28)

야곱은 자녀들에게 축복할 때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라고 말씀함으로써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복을 받을 만한 그릇대로 주십니다. 곧 믿음의 분량대로 주십니다. 그러면서 요구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81:10)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하지 아니하기에 완악한 대로 버려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천부적 기질인 달란트가 있고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주어진 은사가 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우리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롬 12:3에서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그래서 우리는 그릇을 준비해야 하고 빈 그릇, 깨끗한 그릇, 큰 그릇을 준비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그릇 속에 담긴 믿음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성숙해질 때 결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선물을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말씀의 은혜는 우물입니다. 준비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제는 그 우물에서 물을 사람이 떠서 먹어야 그 샘은 물의 근거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 같이 말씀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모든 것을 준비하여 물가에까지 인도해 주셨는데 떠서 마시지 않는다면 샘물은 의미가 없듯이, 인간이 외면하고 관심이 없는 하나님의 선물은 그 또한 빛을 잃게 됩니다. 믿음은 결단을 통하여 믿음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11:1)이 됩니다.

은혜를 받아들입시다. 믿고 순종합시다. 그리고 요구하실 때 결단하여 사명을 감당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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